책소개<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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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2-06 08:29 조회1,629회 댓글0건본문
성폭력에 대한 페미니즘 정치학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김윤은미 기자
2004-02-29 21:24:56
성폭력 피해라는 트라우마(외상,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에서 살아남아 ‘생존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철학을 전공한 여교수 수잔 브라이슨이 자신의 성폭력 경험과 치유 과정을 기반으로 자아와 외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트라우마는 예를 들어 ‘2,4,6, √-2…’ 또는 ‘2,4,6,!…’과 같은 수열에서 ‘√-2’나 ‘!’ 때문에 도저히 그 수열의 규칙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삶의 연속 속에 ‘√-2’나 ‘!’와 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불러들이면서 우리가 가졌던 삶에 대한 계획들을 산산조각 낸다.”
저자는 조깅을 하다가 갑자기 강간을 당해 거의 죽을 뻔했던 자신의 경험으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강간 경험 이후 유령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던 생활, 우울증 치료약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 모임 참여 등 치유를 위한 개인적인 노력에서 여성폭력 방지법 제정에 대한 촉구, 대학 당국에 여성의 자기 방어와 강간예방 강좌의 개설 요구 등 대사회적인 행위까지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기술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트라우마 치유에 필요한 자아관과 세계관을 녹여낸다.
기존 철학은 아무 도움 안돼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기존 철학(주로 영미분석철학 전통)이 트라우마를 잘 설명하지 못하며, 하나의 철학적 주체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차분하게 비판한다. 물론 이 책 자체가 난해한 이론 서적이 아닌 까닭에, 전통적인 철학의 고전들을 세세히 분석하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는 데카르트를 위시한 근대 철학에서 자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명제들을 토대로, 그 명제들이 트라우마의 특수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간결하게 정리한다.
근대 철학은 각 개인이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결론을 내리는 정신 구조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또한 개인의 자아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관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녀는 철학자들이 자신의 관심을 “현실 세상과 비교해서 더 간결하고 더욱 통제하기 쉽고 더욱 이해하기 쉬운 순수 사유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고 훈련 받아 왔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성폭력을 당한 후 “아마 내가 실제로 여기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래, 나는 그 골짜기에서 죽었잖아”라고 중얼거렸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인식했던 저자의 경험에 대해, 기존 철학의 자아관은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억을 견디면서 살아낼 힘을 얻는 것
근대 철학의 한계를 지적한 후, 트라우마와 자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적 설명을 끌어들인다. 그녀는 자아를 몸으로서의 자아,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 자율적 자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 몸으로서의 자아라는 관점에서, 몸과 자아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밀접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트라우마의 기억은 피해자의 몸에 들러붙어 있어서, 사소한 단서만 주어져도 몸을 통해 다시 감각된다.
그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느의 맛을 통해 프루스트가 회상하는 기억과 트라우마의 기억을 비교한다. 둘 다 환기된 몸의 감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같지만, 프루스트의 기억이 과거의 여러 기억들이 모여서 떠오른 지연된, 긍정적인 성질의 것이라면 트라우마의 기억은 개인이 통제 불가능하며 생생하고도 불쾌한 감각을 수반한다.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트라우마로 산산조각 난 세계를 다시 맞추기 위해서는, 개인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반복해서 말하고,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 분노와 대면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율적 자아의 측면에서 볼 때, 트라우마로 인한 자율성 훼손의 경험은 엄청나다. 저자는 “자율성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자신이 사회와 독립된 자율적이고 일관된 존재라는 신화를 깨는 것이 치유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치유란 트라우마를 잊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일관된 자아란 처음부터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직면하는 일이다.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예전의 나와 합치려 하는 일은 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새롭게 생겨나는 나에게 나 자신을 일치시켜야 할 것이다.” 트라우마는 결코 <>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김윤은미 기자
2004-02-29 21:24:56
성폭력 피해라는 트라우마(외상,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에서 살아남아 ‘생존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철학을 전공한 여교수 수잔 브라이슨이 자신의 성폭력 경험과 치유 과정을 기반으로 자아와 외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트라우마는 예를 들어 ‘2,4,6, √-2…’ 또는 ‘2,4,6,!…’과 같은 수열에서 ‘√-2’나 ‘!’ 때문에 도저히 그 수열의 규칙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삶의 연속 속에 ‘√-2’나 ‘!’와 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불러들이면서 우리가 가졌던 삶에 대한 계획들을 산산조각 낸다.”
저자는 조깅을 하다가 갑자기 강간을 당해 거의 죽을 뻔했던 자신의 경험으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강간 경험 이후 유령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던 생활, 우울증 치료약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 모임 참여 등 치유를 위한 개인적인 노력에서 여성폭력 방지법 제정에 대한 촉구, 대학 당국에 여성의 자기 방어와 강간예방 강좌의 개설 요구 등 대사회적인 행위까지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기술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트라우마 치유에 필요한 자아관과 세계관을 녹여낸다.
기존 철학은 아무 도움 안돼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기존 철학(주로 영미분석철학 전통)이 트라우마를 잘 설명하지 못하며, 하나의 철학적 주체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차분하게 비판한다. 물론 이 책 자체가 난해한 이론 서적이 아닌 까닭에, 전통적인 철학의 고전들을 세세히 분석하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는 데카르트를 위시한 근대 철학에서 자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명제들을 토대로, 그 명제들이 트라우마의 특수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간결하게 정리한다.
근대 철학은 각 개인이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결론을 내리는 정신 구조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또한 개인의 자아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관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녀는 철학자들이 자신의 관심을 “현실 세상과 비교해서 더 간결하고 더욱 통제하기 쉽고 더욱 이해하기 쉬운 순수 사유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고 훈련 받아 왔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성폭력을 당한 후 “아마 내가 실제로 여기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래, 나는 그 골짜기에서 죽었잖아”라고 중얼거렸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인식했던 저자의 경험에 대해, 기존 철학의 자아관은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억을 견디면서 살아낼 힘을 얻는 것
근대 철학의 한계를 지적한 후, 트라우마와 자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적 설명을 끌어들인다. 그녀는 자아를 몸으로서의 자아,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 자율적 자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 몸으로서의 자아라는 관점에서, 몸과 자아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밀접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트라우마의 기억은 피해자의 몸에 들러붙어 있어서, 사소한 단서만 주어져도 몸을 통해 다시 감각된다.
그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느의 맛을 통해 프루스트가 회상하는 기억과 트라우마의 기억을 비교한다. 둘 다 환기된 몸의 감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같지만, 프루스트의 기억이 과거의 여러 기억들이 모여서 떠오른 지연된, 긍정적인 성질의 것이라면 트라우마의 기억은 개인이 통제 불가능하며 생생하고도 불쾌한 감각을 수반한다.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트라우마로 산산조각 난 세계를 다시 맞추기 위해서는, 개인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반복해서 말하고,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 분노와 대면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율적 자아의 측면에서 볼 때, 트라우마로 인한 자율성 훼손의 경험은 엄청나다. 저자는 “자율성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자신이 사회와 독립된 자율적이고 일관된 존재라는 신화를 깨는 것이 치유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치유란 트라우마를 잊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일관된 자아란 처음부터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직면하는 일이다.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예전의 나와 합치려 하는 일은 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새롭게 생겨나는 나에게 나 자신을 일치시켜야 할 것이다.” 트라우마는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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